남표니 봄 잠바를 사러 갔었다. 이옷 저옷 재 보고 입어 보고 하다가 하나를 샀는데, 우리 아버지 생각이 나서 나올 수가 있어야지.
연세가 지긋하신 분이 입을 옷을 하나 골라 달라고 그랬더니 주인 여자가 좋아라 난리다. 나의 아버진 옷이 전부 허드레 옷이다. 박서방이 입던 옷이 적거나,좀 실증 난다 싶으면 헌옷 수집함에 넣지 않고 아버지께 갖다 드렸다. 나의 아버지는 농사꾼 이셔서 늘 흙과 함께 사시므로 옷에 흙이 묻고 금방 세탁할 수 있는 옷을 입으셔야 하기 때문에, 아무렇게 입어도 될 부담 없는 옷을 찾으신다. 조금 입다가 버려도 아깝지 않을 옷 말이다.
언제 서울 아들집에 가셔서 며느리가 백화점에 들러 옷을 하나 사 드리려고 그랬는데 어머니께서 며느리에게 사지 말라고 그랬단다. "너그 시아바이, 집에 옷이 천지 배까리다. 박서방이 을매나 마니 갖다줘서 ,
그 옷만 입다가 세상 떠나도 옷이 남는데이"그러시며 못 사게 했다고 한다.
내 생각엔 아마도 아들집 가계 축난다고 못 사게 했을지도 모르겠고, 또 박서방이 드린 옷도 많이 있었기 때문에 자꾸 옷을 살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말렸을 수도 있다.
아버진 섭섭 하셔서 늘 나만 가면 늘 헌옷만 입는다고 불만을 내놓으셨다.이 참에 남표니 옷을 사면서 늘 헌옷만 갖다 드렸는데 이번엔 새옷을 사다 드려야겠다 싶어 색이 좀 점잖은 것으로 골라 옷가게를 나섰다. 제법 비싼 값을 치르고.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자랑을 하고 싶고 아버지를 조금 더 빨리 기쁘게 하여 드리고 싶어서 좀이 쑤셨다.
전화를 걸었더니 전화기 너머로 두 분이 옥신각신 말다툼을 하시며 어머니가 "여보세요"하셨다.
"엄마!. 전데요, 아버지 좀 바꿔 주세요"그랬더니
"당신 전화세, 왜 나 보고 받아라고 그카능겨"그러시며 아버지 손에 전화기를 주는 듯 했다. 아니나다를까 아버지는 귀가 좀 어두워 전화를 잘 받지 않으려고 하시는데 부엌에 일 하시던 어머니는 아버지가 전화를 받지 않으시자 달려와 받으시며 왜 전화를 받지 않느냐고 한마디 하시며 전화를 받으셨던 모양이다.
귀가 어두워 보청기를 해 드리고 싶지만 번거롭다며 싫어 하시는 아버지다.
"아부지요, 제가요 아부지 봄잠바를 하나 샀거등요"
"야야~~! 돈도 음는데 뭐할라꼬 옷을 샀노?"
"아부진 좋으시면서 괜히..."그랬등만
"으허허~~!, 좋기야 하지만 너그가 뭔 돈이 있노?. 목욕비도 안받아 놓고"그러셨다.
주말이면 우리 가족은 엄마 아버지 모시고 심층수 온천엘 가는데, 목욕 값을 한번도 못 내셔서..부모도 너무 돈에 떨면 밉상 받는다며 십만원을 주셨다. 부모 자식간에 뭔 목욕비를 받느냐고 내가 사양하고 되 드렸더니 미안 하신 모양이다.우리는 쌀이랑 반찬 가지를 늘 얻어다 먹는데.자식 주신 것은 잊어 버리나 보다.
봄비 내리는 오늘, 옷을 갖다 드렸더니 거울 앞에 이리 재고 저리 재며 폼을 잡아 보시는 우리 아버지.....
자식 돈 없다 걱정 하시지만 새옷 앞에는 기분이 좋으신가 보다. 이번엔 어머니께서는 아무 말씀을 아니 하셨다. 헌옷만 입으시고 새옷 한번 입지 못하셨던 아버지가 새옷을 입으시고 폼이 정말 멋있었으니 어머니도 기분이 좋으셨던 모양이다.
아버지...우리는 어머니를 입가에 달고 살지만, 아버지를 잘 부르지 않는다. 그래도 언제나 묵묵하게 서서 우리를 지켜 주신 우리 아버지....아버지 당신이 계셔서 우리의 삶도 있습니다.
입으실 때 마다 거울 앞에서 얼마나 좋아 하실지...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2006. 4.10. 아버지 옷 사드린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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